보통 죽음을 크게는 육신과 영혼의 분리로서 2단계로 표현을 한다. 그러나 혼과 영을 분리하여 3단계로 적용 하여 보기도 하지만 한가지 더 한다면 사회적 죽음도 현대에 들어서는 심각한 현상의 죽음의 분류에 합류한다.
* 육의 죽음: 육신에서 영과 혼이 분리된 상태로 신체적인 모든 기능이 멈춘 상태. * 혼의 죽음: 육체의 움직임을 명령하는 생각과 사고가 없는 상태(코마)라고 한다. * 영의 죽음: 혼을 다스려 인간으로써 참되게 살아가도록 하려는 의지가 없는 상태. * 사회적 죽음: 사회의 적응력이 상실된 상태.(왕따는 살인행위이다)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다가온다.] 그 죽음을 진지하게 파 헤쳐 보는 것은 삶과 운명을 이해하는 시작이 된다. 반드시 나를 찾아 오는 죽음은 선택이 아닌 필수인 것이다. 우리는 그 죽음을 정면으로 응시할 때 나의 삶의 마지막 출구를 잘 걸어갈 수 있는 것이다.
[죽음은 자연의 섭리로 다가온다.] 회피 할 수는 없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할 것이며, 나를 향해 다가오는 죽음을 이해하고, 준비함으로 죽음과 화해하여야 할 것이다.
[죽음은 “소명”(召命)이다.] 모든 인간은 창조자의 소명아래 태어난다. 그리고 죽음 또한 그의 소명으로 이루어진다. 일직선상위에 놓인 삶의 여정가운데 여러 가지 많은 일들로 채워지고 또한, 변화를 거듭하며 각자의 일생이 만들어져 간다. 우리는 인생의 정해진 짧은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대로 내 자신을 드리는 것이며 이 땅에 태어난 것과, 살아 있는 순간들, 그리고 죽는 것 까지라도 모두가 하나님 의 소명에 의해 사용되어지는 도구들 이다.
[죽음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 죽음 자체는 생명에 마침표를 찍는 것이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깨달음은 나의 삶을 더욱 소중하게 느끼도록 해주며, 삶의 우선순위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따라서 의식이 맑을 때 천천히 마지막 날들에 대한 준비를 하는 것이 좋다. 두번 연습 과정이 없는 것이 죽음이기 때문에 죽음의 절정을 준비함으로써 평화롭고 고통 없는 과정을 스스로 연출해야 한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물어보면 대부분은 세계 일주나, 평소 먹지 못했던 값비싼 음식 등을 열거한다. 먹고 싶은 것 등을 말한다. 그러나 실제 죽음을 계수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조금이라도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한다.
죽음에 대한 철저한 준비는 인생의 흐름을 걸러주는 가장 좋은 필터의 역할을 한다. 내일이 꼭 다시 찾아올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지금 보내고 있는 오늘이라는 시간이 내 생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 육체를 위해서는 영원히 살 것처럼 돌아보고, 영혼을 위해서는 마치 내일 죽을 것처럼 돌보라. -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느니라 -(전7:4)
준비된 자는 평화롭고 당당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음은 물론이고, 현재 영위하고 있는 삶의 시간들을 더욱 의미 있게 채울 수 있다. 다시 말해 오늘의 풍요로운 삶은 내일이 준비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는 의미다.
[좋은 죽음(well-dying) ?] 사랑하는 가족들 사이에서 편안하게 숨을 거두는 것, 자신이 일생동안 사랑했던 가족들과 함께 차근차근하게 이 땅에서의 작별을 준비 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분주한 삶에 마냥 쫒기다가 마지막 순간엔 환자라는 나약한 모습으로 원치 않는 의료기구들의 무서운 환경과 두려움에 떠는 마지막을 맞이하고 있다. 그와 반대로 이미 죽고 난 시체를 안치하는 영안실에 대해서는 엄청난 관심을 가진다. 영안실은 갈수록 화려하게 꾸며지고 더욱 고급화 되어가고 있는데 이것은 일의 앞뒤가 바뀐 것이라 아니 할 수 없다.
[행복한 죽음(Happy-ending)?] 진정한 Happy-ending의 조건은 “영생에 대 한 확신이다”인간은 어쩔 수 없이 육신의 죽음 을 맞이한다. 그렇지만 육신의 죽음 이후 나의 영혼이 거하는 곳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만이 진정한 죽음 즉, 행복하고 평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짧은 인생을 이 땅에 살면서 창조자이신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우리의 영혼이 보내신 이의 곁으로 돌아간다는 확신을 가짐으로써 영혼의 돌아갈 곳에 대한 준비는 되어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우리의 육신의 죽음은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가? 가장 중요한 영혼은 구원 받았으니 육신은 아무렇게 되도 상관이 없는가? 그토록 중요한 "영혼의 그릇" 역할을 감당했던 육신의 준비된 처리야말로 인간 본질에 대한 마지막 의무요, 책임이며 영혼의 구원과 동일시 여기는 "Happy-ending"의 조건이 될 것이다.
2) 죽음의 준비(교육)
죽음준비교육이란? 죽음의 의미를 평소에 미리 생각해보고, 삶을 보다 보람되게 영위함으로써 죽음이 갑자기 찾아오더라도 편안히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교육이다.
[교육의 내용은?] 첫째, 죽음준비의 중요성을 제시한 다음, 둘째, 웰빙을 잘 죽는 웰다잉(행복한 죽음)에까지 확대시켜야 하는 점을 지적하고, 세째, 우리 사회 죽음이해의 현주소를 분명하게 제시해 죽음정의가 없는 사실을 밝히고, 넷째, 일반인의 죽음이해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제시하고, 다섯째, 국내외 죽음 준비교육의 현황을 간단히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죽음준비교육의 효과를 제시하는 순서로 논의를 진행한다.
하루하루 살기 바쁜 세상인데, 언제 올지도 모르는 죽음까지 미리 생각해야 하는지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다. 죽음준비라는 말을 잘못 이해하기 때문이다. 또 죽음 준비는 노인만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죽음은 나이순으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나이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으므로, 죽음준비는 노인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 모두에게 관계된다.
자동차 사고에 대비해 보험을 들거나 노후를 대비해 연금을 매달 붓고 있기는 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죽음준비는 마치 남의 일이기라도 한 듯 전혀 하지 않는 게 바로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죽음 준비는 삶과 죽음 각각에 관련해 말할 수 있다.] 첫째, 죽음 준비는 삶과 관련해 삶의 시간이 제한되어 있음에 유념하면서 지금 자신이 살아가는 방식을 돌아보고서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보다 의미 있는 삶을 영위하라는 뜻이다. 둘째, 죽음 준비는 죽음과 관련해 평소에 죽음을 미리 준비해 갑자기 죽음이 찾아오더라도 편안히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충분히 준비해 두라는 의미이다. 죽음 준비는 한 마디로 요약하면 갑자기 찾아올 수 있는 죽음에 대비하여 삶을 보다 의미 있게 살라는 뜻이다.
죽음준비는? 삶을 이치에 맞게 살아보기 위해 임박해 있는 죽음을 생각해보라는 뜻이다. 따라서 죽음준비는 죽을 준비가 아니라 바로 삶의 준비를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죽음 준비를 하지 않고 삶을 영위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죽음준비교육은 이 땅에서 제대로 살도록 하기 위한 삶의 교육이다.
죽음을 편안히 맞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될지 심사숙고 할 필요가 있다. 죽음을 편안히 맞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바로 지금 우리가 삶을 영위하는 방식이라고 달라이라마도 말했다. 삶을 이치에 맞게 살지 않고서 죽음을 편안히 맞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올바르게 사는 법을 익혀야 죽음을 평온하게 맞을 수 있는 것이다.
죽음은 언제나,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으므로,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제한되어 있음도 우리는 알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생활을 보다 단순하게 이끌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하찮은 활동과 사소한 관심거리로 삶의 시간을 가득 채우게 되고, 삶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 즉 죽음의 임박성에 대면하지 않게 된다.
죽음의 임박성을 의식하면서 살게 될 때 ‘만일 내게 주어진 시간이 한정되어 있다면 내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지’자기 자신에게 되묻게 된다.
3) 죽음준비교육의 현황
미국의 경우 1963년 봄학기에 로버트 풀턴(Robert Fulton)교수가 미네소타 대학에 ‘죽음의 준비과정’과목을 개설한 이래, 많은 주(州)의 초등, 중등, 고등학교에서 다양한 교과목 안에 포함시켜 교육하고 있다.
1970년에는 첫 번째 학회가 있었고, 보건교육의 일부로 가르치기도 하고, 죽음을 문학의 교재로 취급하기도 하고, 사회과목 수업에서 다양한 시각으로 가르치기도 한다. 청소년들에게 호스피스 병동에서 봉사를 하게 하는 이유는? 죽음의 여러 모습을 보며,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평소에 하라는 것이다.
[국립 죽음준비교육 센터] (NCDE : National Center for Death Education), [죽음준비교육과 상담 학회] (ADEC : Association for Death Education and Counseling) [죽음, 임종, 사별에 관한 학회] (International Work Group on Death, Dying, and Bereavement), [국제임사체험연구회] (I.A.N.D.S. : 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Near-Death-Experiences)
독일은 죽음준비교육의 전통을 풍부하게 지니고 있다. 기독교 신자라면 일요일 교회 설교를 통해 죽음준비의 중요성, 사후의 영원한 생명에 대해 배우는 일이 많다.
일본도 독일 출신의 신부 알폰스 데켄 교수가 동경의 죠지대학에 1975년‘죽음의 철학’ 강좌를 개설했고 82년 ‘삶과죽음을생각하는세미나’ 85년‘삶과죽음을생각하는 회’를 결성해 활동한 이래 일본 전역에서 다양한 모임에서 활동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4월 15일은 '유언의날'이다. 변호사연합회가 주관하여 '유언' 캠페인을 벌인다. 유언장 작성, 상속에 대한 법률적 상담 강연 등 각 층의 지식인들이 교육을 담당하고있다. 또 2004년부터는 예산을 편성해 죽음준비교육을 학교교육에 포함시키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최근에 죽음준비교육을 종교와 복지시설에서 평생 교육프로그램으로 시작, 무엇보다도 죽음을 보다 심층적으로, 체계적으로 가르치고 죽음의 이해와 성숙한 죽음문화, 바른 죽음을 이해이고 바른 죽음정의인지 구체적인 의견제시가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죽음이 과연 끝인지 아닌지 하는 문제, 임종의 유형, 죽음체험과 명상수행, 성숙한 죽음문화의 모색, 죽음준비의 구체적 내용 등 핵심 내용이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또한 자살문제와 웰다잉 교육을 연결시켜야한다. 자살은 가장 바람직하지 못한 죽음방식이므로 죽음준비교육에서 이 문제를 간과할 수는 없다. 더구나 웰다잉 교육이 자살예방에 효과적인 점을 감안하여 웰다잉 전문가들이 많이 양성 되어야 한다.
4) 죽음준비교육의 효과? 첫째, 사람의 평등, 누구나 죽는다. 둘째, 시간의 평등, 우리는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 셋째, 장소의 평등, 우리는 어디서든지 죽을 수 있다. 네째,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는 아직 정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와 같이 인간은 4가지 이유로 죽음 앞에서 평등한 존재이다. 그러나 누구나 이와 같이 4가지로 똑같은 조건에서 죽음을 맞이하지만, 사람마다 죽어가는 마지막 모습은 똑같지 않다.
사람이 죽어 가는 모습은 또한 동물의 죽음과 비교해 볼 수 있다. 동물은 육체적으로 쇠약해 지다가 죽게 되지만, 인간의 경우 육체적으로는 쇠약해져 가도 정신적으로 성장을 계속할 수 있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 육체적으로 노쇠해져 갈수록 정신마저도 나약해지기 십상이다.
그러나 육체의 기능은 점점 쇠약해지기는 하겠지만, 정신력마저도 함께 늙어갈 이유는 없다.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인간은 정신적, 인격적으로 성숙을 거듭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죽음은성숙의마지막단계’라고 말할 수 있다.
죽어가는 사람들 대부분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절망, 부정, 분노의 감정을 품는다. 이런 임종 모습은 인간적으로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반응이지만, 임박한 죽음에 순응해 수용한다면, 이는 인격적으로 성숙했음을 시사해주는 것이다.
죽음을 지나칠 정도로 두려워하거나 혹은 죽음을 무조건 부정하는 식으로 죽어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점점 다가오는 죽음에 대해 화를 낼지라도 답답한 것은 오히려 자기 자신일 뿐이다. 순응, 희망, 여유, 밝은 죽음의 단계로 올라가야만 죽음을 편안히 맞이할 수 있다.
어떤 생사관 혹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이 크게 차이가 난다. 따라서 동일한 시간과 공간에서 함께 삶을 유지하고 있는 우리는 죽음 앞에서 기본적으로 평등한 존재이지만, 실제에 있어서 평등한 존재는 아니다. 이제,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는 죽음을 실제로 맞이하기 이전에, 나는 어떻게 죽을 것인지 물어 보았을 때, 어떤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20대 대학생들에게 죽음준비교육이나 자살 예방교육 시 학생들의 반응은 20대가 왜 죽음준비를 해야 되는지 의아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죽음은 나이에 관계없이 찾아오고, 죽음준비란? 곧 삶의 준비를 뜻한다는 것이다.
5) 교육 사례
“사형수의 마지막 증언을 들어보면, 삶과 죽음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사형수들의 마지막 모습을 살펴 보면, 정말 그렇게 끔찍한 일을 저지른 사람이 과연 저 사람일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달라진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사형수들의 이런 변화된 모습을 보았을 때, 잔혹한 행위를 저지른 뒤에 후회한다 해도 이미 늦은 일이다. 자신이 살아 있을 때 죽음에 대해서 미리 생각해 보았다면, 아마 그런 잔혹한 일을 저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죽음준비라는 것은 단순히 죽음에 대해 준비하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보다 가치 있게 살라는 의미이다.
가능하면 어렸을 때부터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고 자신의 삶을 보다 의미 있게 사는 것은 건강한 삶과 건강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사형수의 마지막 증언을 통해서 우리는 죽음준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자살사례를 살펴보면 경제적, 사회적인 원인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자살행위를 전적으로 사회에 그 책임을 돌릴 수는 없다. 만약 누군가 자살충동을 느낀다고 니에게 말한다면 나는 우선 말보다 꼭 한 번 안아줄 것이다.
‘스스로 목숨을 버릴 정도로 힘든 일이 있니?’물어보고 친구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주겠다. 대부분의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죽음에 대한 아무런 생각이 없이 지금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충동적으로 자살을 생각해 자살하면 모든 일이 해결되고 자신은 편안해 질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에서 온다.
그러나 자살을 강행함으로써 불행한 삶과의 단절을 바라겠지만, 삶과 죽음은 단절이 아니라 연속이다. 자살하는 사람은 자신이 살아온 이력과 자살행위로부터 무관할 수 없다. 우리에게는 인간답게 살 권리, 인간답게 죽을 권리가 있다. 자살한다고 해서 더 나은 상태로 나아가거나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심적으로 안정되고 정서적으로 편안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힘이 들 때는 언제나 내가 옆에 있음을 기억해’라고 말 할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삶에 의지와 희망을 가지는 것이다. 자기 자신은 존엄한 존재라는 것에 대해 긍지를 가지고 스스로를 사랑한다면 자기 자신을 버리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심각한 현상은? 자살이 해결책이 된다, 자살권이 있다, 죽으면 고통도 끝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 이런 사람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문제이다.
아무도 죽음이나 자살에 대해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는 상황에서 막연하게 이런 식으로 생각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경우, 고통이나 스트레스가 오랫동안 지속되고 쉽게 해결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면 자살을 심각하게 생각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자살은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해결책이고, 자살권이 자기에게 있고, 자살하면 현실의 고통은 끝이라고 평소에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살문제를 미봉책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 사회 죽음의 질에 문제가 심각하니까 자살률이 급증하는 것이다. 자살률이 높은 것에만 사회에서는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문제의 핵심은 죽음문화의 부재로 인해 자살을 비롯한 불행한 죽음이 양산되고 있는 점에 있다.
6. 죽음을 앞둔 말기환자의 10가지 소원
1) 가족이나 친구가 가까이 있기를 원한다. 2)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해 스스로 결정하기를 원한다.(자율성) 3) 적극적인 삶에 대해 격려 받기를 원한다.(삶에 대한 강한 욕구) 4) 죽음의 주인공으로서 역할을 하기 원한다. 5) 자신의 병에 대해서 진실을 알고 싶어 한다. 6) 품위 있게 위엄성을 가지고 죽기 원한다. 7) 자신의 생애를 돌아보기 위해 치료의 효과를 기대한다. 8) 고통을 통제할 수 있기를 원한다. 9) 유머나 웃음을 갖기 원한다. 10) 죽음 후의 영생에 대해 알기 원한다.
1) 첫 번째 소망은 환자는 옆에 가족이나 친구가 있어주기를 원한다.
말기 환자들에게 가장 견디기 힘든 문제는 사람들에게서 버림을 받았다는 느낌이다. 말기환자들은 다른 어느 때보다 사람들과 접촉하기를 원하고, 옆에 누군가가 있어주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따라서 의사나 간호사들이 친구처럼 말동무가 되어주는 것이 좋다. 그러나 대부분의 말기 환자들은 죽음을 직면하는 것이 두려워 이들과의 만남을 기피한다. 이와 같이 죽음에 대한 공포심은 의사나 간호사는 물론 가족과 친척들까지도 환자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요인이 된다.
사실 죽음이라는 어두운 세계로 향하는 환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옆에 가까운 사람이 함께 해주는 것이다. 그들은 버림 받은 존재가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가족과 지역 사회의 공동체로부터 아낌을 받는 존재이기를 원한다.
2) 두 번째 소망은 삶과 죽음의 문제를 자기가 결정하기를 바란다.
죽음을 앞둔 환자들은 개인적인 자유와 자율성을 갖기 원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 삶의 방법을 스스로가 결정 할 수 있기를 원한다. 의료진은 환자의 결정과 권리를 인정하고 존중해 줘야한다.물론 이는 쉬운일이 아니다. 능력의 경계선을 정확히 긋기가 어렵고, 어떤 환자는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능력과 힘이 점점 약화되기 때문이다. 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오히려 환자가 자신의 일에 대해 스스로 결정권을 가질 수 있도록 권장하고 그런 분위기와 조건을 마련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환자가 그러한 능력이 있는 한 자기의 결정과 자기 일을 스스로가 할 수 있도록 격려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3) 세 번째 소망은 비록 말기 환자라 할지라도 인격적인 성장과 삶의 격려를 받기 원한다.
인간은 역동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무언가를 향해서 나아가고 성장을 거듭한다. 말기 환자를 대할 때 인생의 내리막 길을 가는 사람이라 생각하고“저 사람은 이제 끝이다” 라고 단정해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독일어에서는 죽는다는 표현이 동물에게 쓰는 말과 인간에게 쓰는 말이 다르다. 어떤 환자가 죽기 전 가족들과 좋은 추억들을 회상하며 평소 때 보다 더 활기차게 보냈다고 한다면 이것은 죽음 앞에서 포기와 거부함의 발버둥이 아닌 죽음의 순간까지 긍정적으로 즐기는 삶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4) 네 번째 소망은 자신이 죽는다는 과정에서 적극적인 주인공 역할을 하고 싶어 한다.
흔히 ‘죽어가는 말기 환자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는데 그와 반대로 ‘죽어가는 환자는 사회의 공동체를 위해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생각해봐야 한다.
실제로 말기 환자는 자신이 존재 가치가 없는 사람이기 보다 공동체를 위해서 중요한 존재로 남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가족들에게 유언을 남기고 자기의 신체 장기를 기증한다든가,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는 등 이런 현상은 사회의 일원으로서 무언가 의미있는 것을 남기고 싶은 마음 에서 나오는 것이다.
5) 다섯 번째 소망은 말기 환자들은 자신의 병의 진실에 대해서 알기 를 원한다.
1960년대에는 미국 의사의 90%가 절대로 자기 환자에게 중병 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 이는 환자를 진실로 위해서 라기보다는 의사 자신이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의사들은 보통 사람들 보다 죽음에 대해 직업적으로 더 예민 하며 두려워한다. 그러나의사는환자본인에게정확한사실을알려야할의무가있다.
<환자가병명을알아야하는이유>
첫번째, 진실을 안다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이자, 인간의 기본적인 또 하나의 가치이며, 자기 자신에 대한 책임이기 때문이다.
두번째, 진실을 말해준다는 것은 환자와 의사간의 기본적인 신뢰관계 를 유지하는 것과 같다. 환자가 의사를 신뢰하지 못하면 병을 치유하는데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세번째, 환자에게 진실을 말해주지 않음으로써 항상 의심이나 감시 하는 태도를 갖게 되고, 의사와 병에 대해서 의논하거나 물어볼 수 없는 상태가 되면 환자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
네번째, 환자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미리 앎으로써 과거에 하고 싶었던 일, 혹은 미처 하지 못했던 일들을 마무리할 수 있는 값진 시간을 갖게 된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 어떤 환자에게는 전문가의 조언을 통해 조심스럽게 알려야 할 경우도 있다.
6) 여섯 번째 환자는 품위 있게 위엄을 지니고 죽을 권리가 있다.
지금은 의학이 발달되고 여러 가지 첨단 의료 기구들이 발달돼 있어 인위적으로 사람의 생명을 연장 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올바른 행위인지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즉 죽는 과정자체를 잠시 지연시키기 위해 수많은 기구들을 동원해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생명을 연장시키는 행위가 용인될 수 있는지 깊게 생각해봐야 한다.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경우임에도 불구하고 인위적으로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이 진정 환자의 존엄성을 인정하는 행위인지 고심해 봐야할 문제다.
7) 일곱 번째 소망은 환자는 자신의 생을 정리하기 위해 치료효과를 기대한다.
환자가 살아오면서 가졌던 인간관계에 대해 크게 후회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죽는 것에 대해서 더 많은 두려움을 갖는다. 특히 가족들과의 문제, 원한관계, 제정문제, 은혜를 입고 아직까지 미루어 왔던 일 등 모든 사소한 문제까지 포함한다. 지금껏 이런 문제들을 해결을 못해 고통스러워했다면 이제 용서와 화해를 통해 편안한 마음으로 마지막을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8) 여덟 번째 소망은 고통에 대한 통제이다.
고통은 인간이 가장 무서워하고 피하고 싶은 감정이다. 정신적, 육체적 고통과 사회적인 고통, 그리고 영적고통 이 네 가지의 고통에서 자유스러워지고 싶어 한다. 인간이 마지막으로 다가오는 죽음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야 말로 가장 절실한 고통의 통제일 것이다.
9) 아홉번째소망은환자가유머와웃음을필요로한다는사실이다.
살아가는데 있어서 유머와 웃음은 필수다. 농담과 유머는 다르다. 농담은 말장난 같은 기술적인 표현으로 사람을 웃기는데 중점을 두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으므로 때와 장소를 가려야 한다. 그러나 유머는 따뜻한 감정의 표현이며 친근한 웃음으로부터 나오는 "사랑의 표현"이다. 따라서 죽어가는 사람에게도 유머와 웃음은 활력소가 된다.
유머와 웃음은 말기 환자가 죽음의 과정을 밟아갈 때 그 사람의 정신건강에 도움을 주는 것인데, 아주 친근한 분위기와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따뜻한 미소로 표현되곤 한다.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주신 귀중한 선물중의 하나는 웃을 수 있는 능력과 웃음을 만들어 내는 "유머"일 것이다.
10) 열번째마지막소망은죽은후좋은 곳(천국)에가는것이다.
죽음은 모든 것의 끝이라기보다 또 다른 영원한 생명으로 가는 시작이다. 육신의 죽음 앞에 있는 환자에게 가장 큰 희망을 주는 것은 사후 세계에 대한 희망과 확신을 갖게 해주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결국 생을 정리하는 마지막 길을 걷게 된다. 사랑하는 부모나 가족을 잃고 난 후에 슬픔으로 애통해 하기보다 생전에 죽음의 갈림길에 있는 이들을 잘 돌아봐야 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행복한 마무리를 지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오늘을 잘 살아가는 사람들이 지녀야 할 책임과 의무일 것이다.